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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하나 없는 밤 > 2

소설

by 초록별🌱 2020. 10. 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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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
바람에 나뭇잎이 서로 부딪혀 내는 소리겠거니 고개를 돌린 곳에는 사람이 한 명 서있었다. 인적 드문 곳. 어두운 밤. 낯선 자와의 대면. 이 상황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공포감에서 비롯하는 기분 나쁜 긴장을 조성하는데 너도 나도 일조하려고 경쟁하는 듯 하였다.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응시하기를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손바닥은 벌써 축축해져있었다. 검은 망토를 입고 있던 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학생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라는 후회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 즈음은 하게 되는데, 오늘 한 번 더 되뇌이게 되었다. 외국어 중에서는 그나마 만만한 영어는 아니었다. 알고있는 나라도 몇 개국 되지 않는 머릿속에는 답을 낼 수 없어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만히 쳐다보는 것 뿐이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가진 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는 상대방이 답답한지 후드를 내리며 한 발짝 다가왔다.

"딸랑-"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종이 함께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었다. 이곳으로 안내했던 그 소리.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더 다가오진 않았지만 탐색하는 눈은 거두지 않았다.

사실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소리는 보통의 쟁반에 특별할 거 없는 구슬 굴리는 소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고 고운 소리를 그것에 비교하는 것은 은쟁반과 옥구슬 둘 다 귀했기때문에 귀한 것은 더 좋은 소리를 가지지 않을까 하는 근본 없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뜬금없지만 '귀하게 생겼다는 건 저런 얼굴을 가리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는 생김새였다. 달빛에 비친 은발머리에 반짝이는 옥구슬 같은 두 눈동자. 소녀는 침을 한 번 삼키더니 다시 한 번 한 발짝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딸랑-"
"부름에 응하여 오신 분인가요?"

소녀의 작은 입에서 나온 언어는 아까와 같았지만 어쩐 일인지 문장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너는 누군지, 이 늦은 밤에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물어보려 입술을 떼려는 찰나 다른 이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놀란 소녀는 종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조용하지만 빠르게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얘. 왜 도망을-..."
"쉿-!"

숲을 나와 어느 건물로 들어가더니 마치 숙련된 첩보요원처럼 망설임없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수 십개의 계단을 올라 도착한 곳은 어느 허름한 방안이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가쁜 숨을 고르고 소녀에게 물으니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몇 번을 되물어도 소녀는 이해 못한다는 표정이었고, 나 또한 소녀가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대화하기를 포기한 채 달빛만이 비추는 이 방을 둘러보았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창가로 다가갔다. 창 넘어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있었던 숲, 별 하나 없는 밤하늘, 그리고... 높은 벽이 있었다. 벽 넘어로는 작은 건물들이 가득했다. 퇴근시간이라 자동차로 가득했던 차도는 없었다.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도 없었다. 여러 가게의 네온싸인 간판도, 재잘대며 집에 돌아가는 학생들도, 고된 하루를 보낸 후 퇴근하는 사람들도 하나 없었다. 깜깜한 거리엔 빛도 사람도 없었다.

"꿈을 꾸고 있나?"

꿈이라기엔 달리면서 마른 가지에 긁혀 상처가 난 손등에서 화끈거리는 고통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소녀는 서랍장에서 작은 자기를 꺼내왔다. 그 안에 담겨진 녹색의 진득한 액체를 손등에 발라주는 소녀의 행동은 조심스러웠고 정성스러웠다.

"여기가 어딘진 모르겠지만 난 집에 가야겠어. 손, 고마워. 안녕."

손인사까지 하곤 문고릴 잡고 돌리렸다. 소녀가 뒤에서 내 옷자락을 잡고 끌지만 않았더라면 그 방에서 나와 왔던 길을 돌아갔을테다. 당황스러워하는 소녀의 망토 주머니에서 종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챙그랑-!"
"-는데, 어딜 가시는 것입니까?"

언어소통은 아무래도 저 종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무슨 마법의 도구도 아니고. 혹시 소녀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말을 걸어보았다.

"못들었어. 뭐라고?"

소녀의 눈이 놀란 듯이 동그래졌다.

"어렵게 이곳에 불렀는데... 어딜 가시는 거냐 하였습니다."
"이곳에 불렀다고? 날?"
"예."
"누가 날 부른 건데?"
"제가 불렀습니다."
"왜?"

소녀는 눈을 피하며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답하였다.

"당신의 도움을 받고 싶어 불렀습니다. 어떠한 대가도 치르겠습니다. 부디 절 도와주세요!"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점점 미궁 속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럴때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곤 몰래카메라뿐이다. 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던가. 적당히 맞장구 쳐주면 끝나겠지.

"뭘 도와주면 될까요?"
"네? 어...그..."

떨어진 금색 종을 집어들어 흔들어보았다. 평범한 종이었다.

"빨리 끝내죠? 난 내일도 출근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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