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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한 봄날의 절망 >

소설

by 초록별🌱 2022. 2. 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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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하다. 화창해.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늘을 파랗고 바람은 신선했다. 양복을 차려입고 이 시간에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세상과 동떨어진 듯하다. 철 없는 10대였더라면 사회의 반동분자가 된 듯한 이 기분에 한 껏 취해 들떠있겠지만, 이 나이 먹고 이러고 있으니 집에 가스불을 안끄고 나온 느낌이다. 한 마디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나몰라라 내팽게친 느낌이다.

 사실이다. 나는 해야할 일로부터 도망쳐나온게 맞다. 오늘은 말해야지. 내일은 꼭 말 할꺼야. 그렇게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회사에 짤린 게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잘 알지도 못하는 가상화폐에 퇴직금을 전부 꼴아박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 나는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종종 생각하곤 했다. 만약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해보곤 했다. 그런 생각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게 없어서. 심심해서. 그런데 막상 그 상황에 닥치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주변사람들에게 고백한 후 한껏 위로를 받으며 떠나기. 다른 하나는 조용히 나만 알다가 떠나기.

 

"으아앙-!"

 

 갑작스러운 아이의 울음소리에 감겨져있던 눈을 떴다. 거참 거하게도 넘어졌다. 주변에 아이의 보호자는 없는 모양이다. 아이는 한참을 그칠 생각이 없는 듯 서럽게도 울어잿겼다. 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차며 일어났다.

 

"이봐.""으아앙-!"

 

 웬 오지랖인가. 하지만 딱히 여기 말곤 있을 곳이 없단 말이다.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2주 전 즈음. 휴가 갔다온 사원 하나가 팀원들에게 돌렸던 제주감귤 초콜렛이 하나 있었다. 설마 상하진 않았겠지. 아직도 울고있는 아이의 눈 앞에 두 손가락으로 짚은 초콜렛을 흔들었다. 반응이 보였다. 포장지를 까서 아이에게 건내주었다. 다시 벤치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내 아이의 보호자로 보이는 이의 부름에 사라졌다.

 

적당히 차가운 4월의 바람이 머리를 흩들어놓았다. 얼씨구? 이제보니 이 대낮에 달이 떠있었다. 저걸 상현이라 하던가, 하현이라 하던가. 고등학생 때 얼핏 배운 과학지식을 더듬어보았다. 좋다. 오늘은 추억에 젖는 날로 정했다.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 더듬 더듬. 머릿속을 기어갔다.


안녕하세요. 블로그 운영자 초록별입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창작한 글입니다.

열심히 편집하였으니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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